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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여행하기] 침략자들이 만든 세계문화유산 ‘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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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12-0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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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는 2.5km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 남부 최대 항구도시 “아픈 역사 간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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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틸드 피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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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략자들이 만든 세계문화유산, 갈레(Old Town of Galle and its Fortifications) - Day 13. 2020. 1. 16.(목)

 

 로잔씨가 앞마당에서 방금 딴 야자수를 마시고 갈레로 향한다. 하늘도 바다도 참 푸르다. 날은 뜨겁지만, 스쿠터에 스치는 바람은 상쾌하다.

 

 코갈라(Koggala)에서 스리랑카의 전통 낚시를 하는 노동자를 볼 수 있다. 보고 싶었던 스틸드피싱(Stilt Fishing)이다. 관광객이 오면 얕은 바닷물에 꽂아놓은 장대 위에 앉아 낚시하는 척을 한다. 거친 파도로 배를 띄울 수 없어 파도와 함께 해변으로 밀려오는 물고기들을 낚기 위해 장대를 박아 놓고 낚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장대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고기 대신 사람을 낚는 그들이 애잔하지만,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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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고기 잡는 연기를 하는 배우이다.

 

 꼬박 2시간 걸려 도착한 갈레는 스리랑카의 아픈 역사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갈레는 2.5km의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 남부 최대의 항구도시이다. 성에 오르면 시원한 인도양의 정취를 느낄 수 있고 시가지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지만, 그냥 흥취에 젖어 즐거워할 만한 곳이 아니다. 2004년 12월 발생한 인도양 지진 해일 때문에 스리랑카를 비롯한 인도, 몰디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포르, 아프리카의 소말리아까지 큰 피해를 보면서 23만 명 이상 사망하였다. 스리랑카에서는 약 35,000여 명이 사망하였는데, 그 피해의 중심지가 갈레이다.

 

 갈레는 고대부터 계피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16세기 이후 포르투갈, 네델란드, 영국의 지배를 거치면서 침략의 거점도시로 발전하였다. 특히 17세기 네덜란드 침략자들은 도시 전체를 성벽으로 둘러쌓고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면서 영구적인 식민지를 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옛 시가지와 요새는 인도의 뭄바이처럼 유럽의 침략자들이 만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88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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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uthlands College의 하교 모습

 

 18세기 말에 영국 침략자들이 수도를 콜롬보로 옮기면서 쇠퇴하였지만, 성의 안쪽에서 아직도 당시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 네덜란드 침략 시대의 건물, 교회, 웅장한 저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학교 앞은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와 통학용 릭샤(인도나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주로 인력을 이용하는 교통수단)로 분주하다. 상가가 잘 형성되어 있어 관광객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서양식 레스토랑과 바, 기념품 가게, 숙소 등이 많아 편리하지만, 음식 값이 우리나라 수준이다.

 

 콜롬보 쪽으로 30분쯤 가면 터틀비치(Turtle Beach)가 있다. 수족관이 아닌 자연에서 거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해변이다. 모두 호기심이 많은 어린이가 되어 해조류를 거북이에게 주며 즐거워한다. 스리랑카의 해변은 이렇게 낭만과 추억을 만들어준다.

 

 다시 웰리가마로 향한다. 데와타비치(Dewata Beach)에서는 엄청나게 긴 그물을 힘을 합쳐 잡아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마댈(madal)이라 부르는 스리랑카 전통의 그물 낚시이다. 마댈을 찾아 지난주에 칼피티아로 갔었지만 볼 수 없었던 그것이 오늘 우연히 눈에 띈 것이다.

 

 마댈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그물을 둥글게 치고 해변에서 그물의 양쪽을 잡아당겨 물고기를 잡는 어업방식이다. 그물을 빨리 당겨야 하며, 자칫하면 파도에 휩쓸려 잡은 고기를 다 놓칠 수 있다. 한 번 작업하는데 4시간 정도 걸리며, 오늘 사용된 그물의 길이는 1km라고 한다.

 

 같이 밧줄을 당기며 힘을 모은다. 연장자가 추임새를 넣으며 흥을 돋우니 저절로 힘이 난다. 없어져 가는 문화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몸짓인 것은 아는데, 스틸드피싱처럼 참가비를 요구한다. 못 알아듣는 척하며 주지는 않았지만 함께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어두워질 때쯤 웰리가마에 도착했다. 외국인을 위한 전용해변에서 밤새도록 파티가 있지만 음주운전은 하고 싶지 않다. 의정부에서 5년 일한 후에 가게를 차렸다는 홈플러스치킨의 한 마리 바비큐와 세 병의 라이언은 이국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가 된다. 혼자이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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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리가마는 초보 서퍼들의 천국이다.

 

■ 파라다이스, 웰리가마(Weligama) - Day 14. 2020. 1. 17.(금) 

 

 파라다이스의 사전적 의미는 ‘천상에 있다고 믿어지는 이상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종교적인 관념으로, 어떤 제약도 받지 아니하는 자유롭고 편안한 곳’이다.

 

 오늘 웰리가마가 나에겐 파라다이스이다. 어디를 가야하고, 무엇을 봐야 하는 계획이 없이 그냥 하루를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비록 서프보드를 배우기 위해 이곳으로 왔지만, 오늘은 특별한 계획 없이 그동안 강행군으로 지친 몸을 달래기로 마음먹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인지 어제처럼 로잔 씨가 방금 딴 야자수가 더 달콤하다. 편안한 아침이다.

 

 웰리가마 해변은 온통 서핑 학원이다. 보통 2시간 강습 받는데 5,000루피(32,200원)를 요구한다. 오전에는 즐기는 이들이 많지 않다. 해변은 넓고 평평하며, 시원한 바람에 따라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파도는 다채롭지만 위협적이지 않다. 그래서 웰리가마는 초보 서퍼들의 천국이라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파라다이스도 한순간 지옥으로 변한 적이 있었다. 2004년의 지진 해일로 인해 보이는 모든 것이 바다이었다고 말하는 청년은 그때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가족을 잃었다고 한다. 섬나라인 스리랑카 해안 70%가 지진해일의 영향을 받았고, 35,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비극적인 자연재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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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 갓 잡은 생선이라고 한다. 

 

 해변에는 갓 잡은 수산물을 파는 가판대와 식당이 있다. 싱싱한 참치, 오징어, 도미, 새우가 보기만 해도 입맛을 다시게 한다. 손님이 혼자다 보니 해변은 나의 것이 된다. 짙푸른 하늘과 바다, 반짝거리는 모래, 그리고 음식이 나오자 반사적으로 찾아온 까마귀와 늙은 개 한 마리도 모두 파라다이스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스쿠터 때문에 맥주를 마실 수 없으니 행복이 반쪽이 된다.

 

 잠깐 미리사비치(Mirissa Beach)를 다녀온 후 숙소 옆의 정글비치(Jungle Beach)를 다시 찾았다. 길이가 채 100m도 안되어 보이는 조그마한 모래 해변이다. 연인끼리 또는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신다.

 

 멀리에서는 백인 남성들이 서프보드를 즐긴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살랑거리는 바람, 그리고 시원한 맥주로 참 평화로운 해변이다. 파도가 부서지며 발밑까지 온다.

 

 생선데빌(Fish Deviled)의 냄새를 맡고 누렁개 한 마리가 흘린 조각을 주워 먹는다. 참 자유롭고 편안한 곳이다. 슬슬 졸음이 온다.

 

※ 다음호에는 여행 15일차 ‘보석의 도시, 라트나푸라(Ratnapura)’가 이어집니다. 

 <오석근 작가의 여행기는 본보와 평택자치신문이 공동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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