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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여행하기] 공존의 땅 ‘하푸탈레(Hapu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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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11-0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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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마다 성향과 갈등 있지만 ...


다른 종교와 인종이 평화 만들어가는 공존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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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밀족의 집단농장(Haputale Estate Sherwood Di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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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저히 안 되겠다 - Day 10. 2020. 1. 13.(월)

 새벽 5시, 맞춰 놓은 스마트폰 알람에 눈이 떠진다. 일어나려고 하니 몸이 무겁다. 허리가 뻐근하고 아프다. 걱정이다. 간신히 현관으로 나선다. 싸늘하지만 어젯밤의 산안개는 많이 걷혀있고 상쾌하다. 엘라행 기차가 기적 소리와 함께 새벽을 가르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2010년)으로 등재된 호튼플레인스(Horton Plains National Park)를 트래킹하려고 일어났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어젯밤에 덜덜 떨면서 자욱한 산안개와 어둠을 뚫고 하푸탈레를 찾아올 수 있었던 힘이 진통제 덕분인 줄도 모르고, 처방받은 약을 먹지 않고 잠든 것이 화근이었다. 비록 어제 아침보다 좀 나아지긴 했어도 기력이 회복되지 않으니, 할 수 없이 남은 빵조각을 억지로 입에 구겨 넣고 약을 먹을 수밖에 없다.

 밤에는 진한 안개가 끼고 산비탈을 깎아 만든 북동향의 집이다 보니 환기가 되지 않는다. 이불이 눅눅하고 방안에서는 곰팡내가 나서 영 개운치 않지만, 침대에 다시 누울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도 어지러움이 가시지 않는다. 속도 메슥거린다. 고개를 젖히니 핑 돈다. ‘아뿔싸!’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이석증이 찾아온 듯싶다. 괴로움에 뒤척인다. 나도 모르게 잠들어 다시 깨니 벌써 10시 반이다. 마당으로 나오니 밝은 햇살에 힘이 솟는다.

 2층에는 주인아주머니가 어린 아들을 안고 빨간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귀여운 딸 싼델리와 함께 햇볕을 쬐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짹짹거리는 새끼에게 모이를 먹이는 어미 새처럼, 엄마는 사랑스러운 얼굴로 어린 아들에게 음식을 조금씩 먹이고 있다.

 옆집 개가 짖기 시작한다. 샌디라는 검은 개는 나를 위협하지 말라는 듯 으르렁거린다. 옆집 개가 꼬리를 감추자 이내 으르렁거리는 것을 멈추고 아들 옆에 가만히 앉아 앞산을 바라본다. 11시 50분, 다시 엘라행 기차의 기적 소리가 울린다. 이제 움직여야겠다.



■ 공존의 땅, 하푸탈레(Haputale) - Day 10. 2020. 1. 13.(월)

 어제는 몸이 불편하고 늦게 도착하여 식당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낮에 남은 덩어리 식빵을 꼭꼭 씹으면서 유튜브 먹방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었는데, 새벽에 먹은 약의 힘으로 생기가 나니 배가 고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쌀밥과 얼큰한 김치찌개는 아니더라도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마음으로 가장 근사해 보이는 레스토랑(Glace)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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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물볶음밥은 고추양념으로 비벼먹으면 입맛에 맞다.

 눈에 띄는 음식은 커다란 식빵 12개를 살 수 있는 700루피(4,500원)짜리 해물볶음밥이다. 새우와 돼지고기, 당근, 파 달걀을 넣고 볶은 밥에 생선살, 버섯, 고추, 당근, 피망을 곁들여서 근사하다. 매콤한 고추 양념까지 있으니 밥이 술술 들어간다. 이제 몸이 따뜻해지면서 주변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우르르 하교하고 있는 파란색 반바지와 흰색 반소매 티셔츠에 자주색 넥타이를 한 초등학생들이 눈에 들어온다. 추울까 걱정스럽다. 때마침 학교(Haputale Dhammananda Maha Vidyalaya)에서 나오는 선생님에게 방문할 수 있냐고 물으니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한다. 학교로 들어가니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자신의 교실로 안내한다. 학생들이 환하게 웃으며 이방인의 방문을 어색해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순박하고 순수한 미소가 아픈 허리를 낫게 한다.

 한 학생이 일어나더니 나의 방문에 환영의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또렷한 한국말이다. 순간 감동이 밀려온다. 여행을 통해 스리랑카 사람들이 한국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자라나는 세대에게 한국말을 들으니 이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음에 자랑스러움이 느껴진다. 아버지 세대의 희생이 고맙다.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과학실에 들어가니 한숨이 절로 난다. 낡은 책상과 오래된 기자재로 구성된 실험실과 약품이 잔뜩 쌓여있는 창고 같은 자료실이다. 선생님은 자랑스러운 듯이 설명한다. 과학을 열심히 가르치시는 듯하다. 하지만 열악한 시설이 안타까워 설명은 귀에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교육은 나라의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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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사원(Pankatiya Temple)


 하푸탈레는 다른 도시보다 인구 구성이 독특하다. 스리랑카 인구의 약 75%가 불교를 믿는 싱할라족이지만, 힌두신을 믿는 남인도 출신의 타밀족이 약 20%로 다른 지방보다 많다고 한다. 영국강점기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많이 퍼져 있으며, 무슬림도 길에서 쉽게 마주친다. 좋은 길목마다 유리 안에 안치한 불상이 있고, 힌두와 이슬람사원, 그리고 교회를 쉽게 볼 수 있다. 종교마다 독특한 성향과 갈등이 있지만 하푸탈레는 서로 다른 종교와 인종이 함께 평화를 만들어가는 공존의 땅이다.

 어느새 1시 30분, 먼 산 쪽에서 산안개가 밀려온다. 하푸탈레에 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른다는 립톤싯(Lipton's seat)에 가도 차밭을 구경 못 할 듯싶다. 안개가 더 밀려오기 전에 차밭을 구경하려고 동쪽 산 밑의 마을로 향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무작정 찾아간 마을인 셔우드(Haputale Estate Sherwood Division)는 홍차를 원하는 영국 침략자들로부터 강제로 이주당해 한평생 차밭에서 일해야만 했던 타밀족의 집단농장이다. 홍차 생산에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던 영국인은 불복종하는 싱할라족의 노동력을 대신하여 타밀족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그렇게 실론티는 인도에서 유입된 타밀족의 눈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마을 위쪽으로 인도 모디 총리가 지원했다는 55채의 새로운 집들이 한창 마무리 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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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들이 찻잎 자루를 짊어지고 올라오고 있다.


 찻잎으로 가득한 흰 자루를 등에 짊어지고 포대의 끈을 이마에 두른 여인들은 비탈진 산길을 올라와 집하장으로 향한다. 온종일 비탈진 밭에서 찻잎을 따는 일은 매우 고된 일일 텐데 그들은 나를 보며 웃는다.

 산비탈에 만들어진 마을이지만 중심지에는 커다란 두르가 사원(Durga Temple)이 있다. 두르가는 시바의 아내 파르바티(Parvati)의 화신이다. 붉은색의 옷을 입고 손에는 신들의 무기를 들고 호랑이를 타고 있는 전쟁의 여신으로 묘사된다. 부정적인 것을 파괴하고 어려움과 위험에 처했을 때 도와주기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도가 높다. 영국 침략자에게 노예의 삶을 강요당했던 그들이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종교이었으리라.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에 이끌려 마을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영국의 식민지 경영의 산물인 롱하우스(Long House) 형태는 아니지만, 비좁은 터에 수십 가구가 어깨를 맞대고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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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고 있다.


 낯선 동네를 두리번거리는 이방인을 아이들이 먼저 반긴다. 말은 안 통하지만 30년 가까이 초등학생들과 살다 보니 눈빛만으로도 소통할 수 있다. 금방 그들과 친해지니 어른들이 웃으며 다가온다. 어릴 때 우리 동네를 보는 듯하다.

 돈벌이가 변변치 않은 산골에서 가난을 대물림하는 이들, 특히 어릴 때부터 평생을 찻잎을 따며 살아야만 하는 여인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기대해본다. 귀국하는 대로 그들과 찍은 사진을 보내주어야겠다. 구름 속을 산책하는 듯 아직 한낮인데도 산안개가 자욱이 밀려온다. 이제 엘라로 가야겠다.

※ 다음에는 여행 11일차 ‘나인 아치 브릿지, 엘라(Ella)’가 이어집니다. 

<오석근 작가의 여행기는 본보와 평택자치신문이 공동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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