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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여행하기] 일출 뷰포인트 ‘피두랑갈라(Pidurang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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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10-1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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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에는 북두칠성이 밝은 빛 품고 있고, 남쪽으로 사자바위 희미하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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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두랑갈라에서 보는 사자바위


■ 일출 뷰포인트, 피두랑갈라(Pidurangala) - Day 7. 2020.1.10.(금)


 새벽 5시, 피두랑갈라로 길을 나선다. 헤매는 것도 잠시뿐, 릭샤(인도나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주로 인력을 이용하는 교통수단)들이 한 방향으로 달린다. 이른 시각이지만 사원(Pidurangala Cave and Rock Temple) 앞에는 여행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손전등을 비춰가며 오르는 길은 참 거칠다.


 20여 분 오르니 엄청나게 넓은 바위에 30여 명의 여행자가 삼삼오오 앉아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눈앞에서 만월이 지평선으로 떨어진다. 서편에는 북두칠성이 밝은 빛을 품고 있고, 남쪽으로 사자바위(시기리야락)가 희미하게 보인다.


 6시 30분, 서서히 구름 뒤로 해가 떠오르니 새벽안개가 자욱한 울창한 밀림과 호수가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사자바위의 윤곽이 짙어진다. 피두랑갈라는 사자바위를 볼 수 있는 최고의 뷰포인트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각국에서 온 200여 명의 여행자가 사자바위 앞에서 인생 최고 장면을 건지느라 바쁘다.


 특히, 원피스를 입은 러시아 여자는 모델이 된 듯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다. 소품까지 가져와서 쉼 없이 셀피를 찍어대는 한국 아가씨의 열정도 만만치 않다. 세 번째 만남이라 몇 장을 찍어주었지만,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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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들이 잡담을 나누며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내려오다 보니 거대한 바위 밑에 부처가 누워있다. 많이 파손되어 수선한 와불의 모습은 어색하다. 뱀이 허물을 벗듯 부처가 새로운 존재로 탈피하는 것 같다. 사원으로 내려오니 말끔히 흰옷을 차려입은 불교 신자들이 엄숙하게 경배하고 곳곳을 쓸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다. 상쾌한 아침이다.


■ 바위산 위의 싱할라 왕궁, 시기리야(Ancient City of Sigiriya) - Day 7. 2020.1.10.(금)


 시기리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82년)에 등재된 고대도시로서, 그 한가운데 솟아있는 것이 사자바위이다. 평민 어머니를 둔 신분의 한계로 인해 이복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 카사파(Kashyapa)는 쿠데타로 아버지 다투세나(Dhatusena)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그는 남인도로 망명한 모깔라나(Moggallana) 왕자의 반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자 수도를 아누라다푸라보다 안전한 시기리야로 옮기면서 재위기간(477~495)동안 계획적으로 도시를 건설하였다. 하지만, 도시는 인도 타밀족의 군대를 끌고 온 동생을 두려워하여 자살을 택한 카사파 왕의 죽음 후에 오랜 세월 동안 밀림 속에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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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 산들바람을 일으켜서 자연냉방을 해 준다.


 시기리야는 사자바위를 중심으로 정대칭으로 설계된 계획도시이다. 바깥에 동서로 800m, 남북으로 500m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해자를 둘러 방어선을 만들고 성벽을 쌓았다. 해자부터 바위산의 입구까지 만들어진 8개의 크고 작은 연못들은 높낮이를 이용하여 물이 흐를 수 있게 하였다. 연못의 물은 거미줄 같은 수로를 통해 자동으로 돌아 정원 전체를 순환하면서 냉방 시스템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물이 부드러운 산들바람을 일으켜서 자연냉방을 해 주는 싱할라 건축 기술의 정수이다.


 수백 미터에 걸쳐 펼쳐지는 왕의 정원에 한때는 잘 훈련된 군사들로 가득 차 있었을 모습을 상상하며 해자를 건너 사자바위로 향한다. 바위 앞까지 잘 정돈된 수로와 건물터가 남겨져 있고, 한쪽에서 복구하느라 노동자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눈앞에 커다란 사자바위가 있다. 바위로 만들어진 커다란 산이다. 전능한 신이 번쩍 들어서 이곳에 옮겨 놓은 듯 매우 독특한 형태다. 180m 높이의 왕궁으로 들어가기 위해 바위 사이의 좁은 남문을 통과한다. 정상까지 1,270개의 계단이 있다고 한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 바위를 올라야 하지만 어렵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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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궁은 바위 사이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아찔한 절벽의 긴 회랑을 지난다. 거울의 벽(Mirror Wall)이다. 예전에는 벽돌 벽에 달걀과 꿀, 석회를 바른 후 매우 정교하게 연마하여 왕이 걸어가면서 자신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7~11세기 이곳에 써진 수많은 시는 스리랑카 문학에 귀중한 보물창고가 되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황톳빛으로 색칠해져 예전의 빛을 볼 수 없다.


 거울의 벽의 위쪽으로 설치된 원형의 철제 계단을 오르면 시기리야 여인(Sigiriya lady)들을 만날 수 있다. 카사파가 부왕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참회의 마음으로 제작했다는 미인도는 화강암에 석회를 바르고 채색하는 프레스코 벽화이다. 원래는 500명이 넘는 여인들이 바위산의 서쪽 표면 대부분을 덮었다고 하나, 지금은 18명의 여인 벽화만 남아 있다.


 벽화에는 불교도에 의해 숭배되는 젊은 여신 타라(Tara)가 시녀의 시중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천상의 아름다움과 관능을 갖고 있는 타라는 허리 아랫부분을 구름 속에 감추고 상반신은 옷을 벗은 채 보석, 팔찌, 목걸이, 왕관, 꽃 장식을 하고 있다. 힌두교의 여신 압사라(Apsaras)가 스리랑카에서는 타라로 바뀐 듯하다.


 원형 계단을 통해 내려오면 다시 거울의 벽이다. 바위산 둘레를 돌아 중턱의 궁궐 입구인 사자 발에 다다른다. 원래는 커다란 사자가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발톱만이 남아 있다. 발톱이 사람 키보다 크니 사자의 머리와 어깨까지 달려있었던 처음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압도적이다. 이렇듯 사자는 왕권의 상징이다. 싱할라족은 사자를 뜻하는 ‘싱하’의 후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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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목구멍을 통해 왕궁에 오른다.


 정상의 왕궁으로 가려면 사자의 두 앞발 사이에 놓여있는 폭이 좁고 철로 만든 계단을 따라 올라야 한다. 사자의 입을 지나야만 했기 때문에 계단 길은 사자의 목구멍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자는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라는 바위 궁전에서 살아서 나가지 못한 이는 카사파 왕이었다.


 아찔한 낭떠러지 길을 올라 바위산의 정상에 오른다. 스스로 용맹한 사자의 후예라고 불렀던 이들이 우뚝 서서 사방을 호령했던 자리이다. 카사파 왕의 자살로 치열한 공성전 없이 요새를 빼앗겼지만 어떤 적도 쉽게 정복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이다.


 축구장 2개 크기의 정상에는 왕궁과 연회장 터, 저수지, 그리고 돌로 만든 왕의 의자가 남아있다. 밑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왕궁은 넓었으며, 물을 모으는 정교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호화로웠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니 신비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가파른 경사면을 가진 180m 높이의 화강암 봉우리 정상에 왕궁이 건설되었다는 것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왕궁을 건설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 절벽을 올라야만 했던 백성들의 희생이 있어 가능했으리라.


 사람들은 아버지를 살해한 광기와 동생에게 정권을 빼앗긴다는 두려움으로 불가사의한 바위 요새를 지었다면서 카사파의 패륜을 비난하지만, 왕위 다툼에서 밀려나면 목숨을 잃게 되는 냉엄한 현실에서 카사파의 선택은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터만 남은 궁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아름답고 평온한 초록빛 밀림의 바다이다. 두려움의 눈으로 사방을 경계해야만 했던 카사파가 볼 수 없었던 신비로운 세계이다. 멀리 새벽에 올랐던 피두랑갈라가 보인다.


※ 다음에는 여행 7일차 ‘싱할라 왕국 최후의 수도, 캔디(Sacred City of Kandy)’가 이어집니다. <오석근 작가의 여행기는 본보와 평택자치신문이 공동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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