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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육삼정 의거, 상해 3대 의거중 하나로 당시 독립운동에 디딤돌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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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3-18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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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3대 의거로 꼽힐 만큼 우리 독립운동역사에 중요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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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삼정 의거 제89주년 기념식 행사 (사진=평택시의회) 




평택시의회(부의장 강정구)는 17일 원심창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육삼정 의거 제89주년 기념식 행사’에 참석했다. 


이날 기념식 행사는 (사) 평택시의회 강정구 부의장 및 이종한 산업건설위원장, 권영화․김승겸․권현미 의원과 최원용 평택부시장을 비롯한 원심창기념사업회 임원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표창수여, 시 낭송, 기념사,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강정구 부의장은 기념사에서“상해 육삼정 의거의 주역이신 독립운동가 원심창 의사의 뜻과 신념이 평택시민과 함께 널리 기억되었으면 한다”며“육삼정 의거 제89주년 기념식이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독립의 소중한 가치와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상해 육삼정 의거는 상해 3대 의거로 꼽힐 만큼 우리 독립운동역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1933년 3월 17일 상해 남화한의청년연맹의 행동단체인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이 주도해 주중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 암살미수사건이다


이로 인해 백정기,원심창 의사는 무기징역을, 이강훈 의사는 징역 15년형을 선고 받은 사건으로 당시 거사는 실패했지만 중국과 한국 등지의 신문들이 암살 계획을 대서특필되면서 침체기에 있던 국내 항일운동에 새로운 단초가 되었으며 원심창, 이강훈 두 의사는 옥고를 치르다 광복 후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1934년 6월 5일 백정기 의사는 향년 39세로 옥중 순국했다.


신동성 기자 enide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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